[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춧불과 탈춤 (상)

다음 글은 김지하 시인이 지난 7월 26일 목포 마당극 페스티벌에서 행한 기념 강연, '운하에서 바다로! 횃불에서 촛불로! 마당극에서 마당굿으로!'의 첫번째 부분이다.

1970년대초 '오적' '비어' 등의 탁월한 담시를 발표하고, 탈춤 판소리 등 전통 민족문화의 재발견을 통해 당시 새로운 문화운동을 선도했던 김 시인은 최근의 촛불집회에서 한국의 문화운동이 나아갈 길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면서 마당굿 등 새로운 문화운동의 진로를 제시하고 있다.

200자 원고지 250매 분량의 긴 글이므로 3회로 나누어 싣는다. /편집자


운하에서 바다로! 횃불에서 촛불로! 마당극에서 마당굿으로!

우선 목포와 서남해안, 부산과 동남해안의 지역 분권적인 생활자치와 관련된 민중적 생명문화운동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자.

목포와 부산, 서남해안과 동남해안은 대운하 따위 만화 수준의 생태파괴적 토목공사 망상을 단 한 칼로 걷어치우고 세계 제1의 조선기술의 축적을 하드웨어로 해서 목하 조성되고 있는 동아시아-태평양시대의 '동로테르담(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은 근대 이후 막강한 해상왕국인 네덜란드의 중심도시로서 이른바 대서양 문명의 허브)이다. 바로 이 허브가 동아시아-태평양시대의 한반도 해안으로 중심이 통하고 있는데 바로 이 현상의 상징어가 곧 '동로테르담-인테그레이티드 네트워크(integrated network, 중심성이 결합된 그물망)'이다.

한국은 이씨조선 500년 폐쇄시대를 빼면 이미 삼한시절부터 활발한 해양국가였고 세계는 바야흐로 해양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동아시아 역사학자 에드윈 라이샤워(Edwin O. Reischauer)와 뛰어난 미래학자인 폴 케네디(Paul Kennedy) 등이 지적하거나 암시하는 것처럼 한국은 네덜란드 같은 해양대국으로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 미래의 큰 가능성을 얻는 방향이며 이 같은 문명사적 프로젝트에는 반드시 전제되는 해양사의 전설적 기억 또한 축적되어 있다. 장보고의 눈부신 해양 활동의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현대 한반도의 역학(易學)적 운수를 물(水)의 시대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역학적으로 맞는 판단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이 좁은 반도 안에서 옹색하게 제 발등이나 제 가슴을 찢으며 산과 강과 숲을 때려부수는, 별 이득도 별 볼 일도 없는 낡아빠진 운하 같은 것이 아니라 삼면으로 활짝 열린 오대양을 통해 육대륙으로 활활발발하게 나아가는 한에서의 '물의 시대'인 것이다.

그러니, 해양만이 유일한 우리의 미래일까?

우리 민족의 시원은 대륙유목계 환웅족과 해양농경계 웅녀족 사이의 결혼에 의한 농경정착-유목이동 양대 문명 사이의 이중 복합의 역사였다. 고구려 벽화에는 '날개 달린 물고기'가 나타난다. 주몽은 대륙계 천손(天孫)이면서 동시에 해양계인 하백(河伯)의 자손이었다.

지금 세계사는 바로 이 같은 대륙과 해양 쌍방향으로의 대차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의 현대사 또한 쌍방향 지향이다. 해양으로의 열림은 이미 누누이 강조되었거니와 대륙 또한 그 열림은 바로 눈앞에 있다. 시베리아 관통철도인 TSR과 중국 관통철도인 TCR은 이미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걸쳐 건설되어가고 있고 단지 한반도 북쪽의 경의선 철도 연결만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북미관계는 대사관 교환 설립 직전까지 가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경제지원도 머지않은 현실이다. 미국 시장의 장기적 스태그플레이션에 의해 기존의 구미(歐美) 대서양 시장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광활한 잠재력을 가진 아시아 대륙의 새로운 시장개척으로 나아가려는 미국 자본주의의 이동방향은 '아메리카를 팔아 아시아를 사라'는 월가(街)의 농담 속에 압축되어 있다.

아시아의 잠재 시장은 고대로부터 전승되어온 '호혜(互惠)와 교환(交換)과 재분배(再分配)'의 성스러운 시장(神市)의 현대적 부활을 요청할 것이라고 예견된다. 이미 노벨상 수상자인 유누스의 '그라민은행'과 수많은 사회적 기업들의 출현, 그리고 아메리카 인디언의 사랑과 제사의 경제인 '포틀라치'의 부활, '지역 통화'의 유행 등은 아시아 시장 개척과 함께 다가올 전 인류문명사의 서서한 대전변의 개막을 알린다.

이것은 가히 개벽적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우리의 민족사와 문화사의 원류에 해당하는 중앙아시아, 파미르, 천산, 바이칼과 알타이에로의 값싼 대규모 배낭여행과 함께 불붙은 새로운 문예부흥, 고대회복의 후천개벽의 물결인 것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바이칼의 알혼섬과 몽골의 성산(聖山) 토토텡그리에서 고대 '부르한(不咸)'의 영성적 우주 문화를 찾아 모여드는 57개국 영성전문가, 명상가들의 새 지구 건설의 비전과 함께 카자크와 알타이의 흥보-놀보설화, 매사상과 늑대소년 등 우리 민족 전래의 설화들, 프리기아와 부여와 신라와 일본을 잇는 새깃털 꽂은 황금전사의 문화, 그리고 키르키스의 마나스 음송시로부터 무가(巫歌)와 판소리의 원류를, 서낭당과 굿의 원형을, 파미르의 춤으로부터 우리 춤사위의 깊은 미학적 원형을 찾게 될 것이며 1만4천 년 전 파미르 마고성(麻姑城) 신화로부터 여성성과 모권제와 우주적 혼돈 질서인 팔려사율(八呂四律, 율려(律呂)의 전복인 여율)의 음악원형, 신시, 풍류, 화백의 전통, '한' 즉 '영원한 푸른 하늘'로 통용되는 유일신의 이름에서 한민족 영성의 비밀, 사마르칸트와 이쉬쿨 호수의 이름이 또한 졸본성(卒本城)이라는 놀라운 발견에서 시원의 유목적 민족 기원의 확인을 통해 우리 자신, 우리 민족의 문화전통을 재확인하며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 ''네오 르네상스'의 물결에 접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곧 '촛불'의 확산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와 동시에 해양 진출은 먼저 민족문화의 해양 농경사적 원류를 확인함으로써 또 한 방향의 르네상스를 가져올 것이고 역으로 전 세계 문화의 용광로였고 또 이제부터의 더욱 치열한 용광로인 이 한반도의 독특하고도 융합적인 문화, 대륙계 신화와 해양계 신화가 종합되고 촛불의 이미지로 상징되는 지역 전통적이면서 동시에 첨단적 글로벌 문화인 어떤 의미에서 디지털 아날로그적인 생명 평화적 변혁의 문화를 탁월한 '포스트 한류'의 형태로 수출하는, 그리하여 전 세계 문화대변혁을 불붙이는 참된 전환 즉 후천개벽을 점화하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대서양 문명의 중심이 동아시아-태평양문명으로 이동하고 있고 바로 그 중심이 한반도라는 점이다. 그 까닭은 물론 하드웨어로서의 물량이동에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깊은 원인은 이제부터 싹터올 문화 콘텐츠, 한마디로 '촛불'에 있다.

폴 케네디는 일본에서 동아시아-태평양 신문명의 도래에 관해 강의하던 중 그 문명의 중심국가가 어디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Never Japan, never China, maybe Korea."

한국 현대사의 중심사관(史觀)은 '해륙사관(海陸史觀)'이다.

해양 진출의 두 거점인 목포와 부산에서 해양문화시대의 콘텐츠 등을 함께 모여 새롭게 의논하는 것은 이 시대에 의미심장한 일이다.

우리가 대륙과 함께 바다로 싣고 갈 콘텐츠는 과연 무엇인가?

물론 온갖 물건들이 다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대문화변혁시대, 유럽인들이 빠져들고 있는 동방회귀(EAST TURNING)의 시대, 미국과 전 세계가 점차 이 이상스런 나라에 대한 호기심으로 긴장하고 있는 시대, 스토리와 콘텐츠 고갈과 미학적 권태와 파탄, 그리고 고비용저효율의 낡은 문법을 탈피하려고 애쓰는 할리우드나 전 세계를 지배하는 서양적 문화양식이 대전환의 결정적 계기를 동아시아, 그것도 한국에서 구하려고 이제 막 눈을 뜨는 시대, 이에 대응하여 2002년 붉은 악마로부터 올해의 촛불에까지 이어지는 생명과 평화, 역동성과 균형, 유목과 농경, 화백과 신시와 풍류의 새로운 가능성, 청소년과 여성의 역사 전면에의 진출, 생활자치 요구와 직접 민주주의, 주모자도 조직도 동원체제도 없는 개체-융합의 자기조직화, 생명·생태·생계·생활 등 구체적인 삶의 아젠다화를 밀고나오며 유머와 풍자와 춤과 노래로 일관하는 자발성·다양성·우연성 등 끊임없는 쌍방향소통과 토론에 의해 합의되는 이른바 '집단지성' 그리고 그 집단지성에 관한 해석과 그 발전과정에서 불교와 동학 등의 '화엄적 개벽' 사상 또는 참선으로의 논의발전, 디지털과 아날로그, 동·서양 문명의 충돌과 문화의 융합 등등.

바로 이것들이 신선한 포스트 한류의 탁월한 내용, 그 콘텐츠가 아닐까?

촛불, 바로 그것이 해양시대의 최고 수출품목일 것이다.

촛불은 후천개벽, 화엄적 개벽, 선불교와 동학 등 남조선 사상사의 결합, 전 인류문명사 대전환의 메시지요 전세계 인류를 치유할 '혼돈의 질서'이며 지구 대변혁의 아키타이프(원형)이자 패러다임의 첫 싹인 것이다.

그 촛불을 지금의 마당극은 자기 안에 과연 참으로 아름답게 켤 수 있는 것일까?

오늘의 내 이야기의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나는 지금 촛불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내 나이 예순 여덟. 이젠 노인이다. 이미 오래 전, 긴 감옥살이에서 풀려났을 때 나는 이른바 민족문화운동에서 손을 뗐다.

본디 나는 매우 질긴 사람인데 왜 그랬을까?

여러분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이제는 도리어 아득한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이야기쯤으로 망각돼버린 사실이 있다.

지금의 마당극을 비롯한 이른바 민족문화운동은 분명 나와 조동일 교수 등 몇 사람이 처음 시작한 것이다. 뒤를 이어 민족문화운동 제1세대가 등장한다.

조동일 교수와 나는 4.19 이후 긴 세월을 대학에서 탈춤과 판소리, 민요, 민화와 속화, 기(氣)철학과 동학, 무속과 불교 등을 서양미학, 중국사상과 함께 열심히 공부했다. 그 무렵 조동일 교수의 '원귀마당쇠', '야 이놈 놀부야'와 나의 '호질(虎叱)', '아구', '땅끝', '진오귀' 등의 작품이 구술되거나 쓰여졌고 또한 공연되었다.

우리는 탈춤의 내용 문제와 함께 그 형식가치들을 긍정적·적극적으로 계승하면서 그것을 현대화하려고 애썼다.

그러한 흐름 가운데는 오늘 이야기의 중심 주제로 제기할 여러 미학적 문제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우리는 그러한 위대하고 탁월한 그 미학적 원리들을 계승하고 현대화한다는 것에 대해 깊은 감동과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분명히 이 자리에서 밝히고 싶은 점은 나나 조동일 교수가 그 무렵 서양연행예술이나 기타 기초예술의 원리나 역사, 그리고 미학, 세계 여러 민족의 그것과 동양의 그것들에 대해 전혀 무식한 채로 우물 안 개구리마냥 오직 우리 것이라 하여 집착하거나 우쭐했다는 식으로 우리의 작업을 폄훼하는 등 주변의 일체 비판 아닌 비판이 전혀 근거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

도리어 우리는 예컨대 연행예술의 경우 '바이마르 시대 극장에 들어갈 때는 두개골을 떼어서 로비에 걸어두고 입장한다'는 정도의 쓰디쓴 자학적 비판이 나올 정도로 유럽 전통연극 양식의 일방주의적 세뇌 미학이나 감성적 독재로부터의 탈출을 갈구했던 브레히트 연극의 한계, 액자 무대에 넌더리가 난 장 루이 바로(Jean-Louis Barrault)가 사방이 트인 권투링의 사각형 무대에서 실험극을 시도하던 현대 유럽 연극의 비명을 상세히 검토하고 세밀하게 귀 기울이고 있었으며 마치 일본 '우키요에(浮世畵)'로부터 햇빛과 바람과 공기의 진동에 개방된 자연 사물의 순간적 인상을 포착하여 유럽 회화의 현대를 열어젖힌 마네, 모네, 고갱, 고흐의 경우처럼 역시 그 한계가 분명한 중국의 경극(京劇)이나 일본의 가부키(歌舞伎)로부터 엄청난 연극 혁명의 모델을 발견한 듯 흥분했던 수많은 유럽 실험연극들, 그리고 영화의 경우 중국의 오행표(五行表)에서 놀라운 영감을 받아 변증법의 영화문법을 찾아냈다는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이론의 신화들을 샅샅이 그 이론서나 작품, 그 효과 등까지도 여러 자료를 통해 공부하고 있었다.

자랑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참으로 눈물나는 이야기다. 왜일까?

이 이야기의 중심부에서 간략간략하게 다시금 지적할 중대한 미학원리들, 그 특징들이 오늘날 여지없이 무시되고 폄하되거나 희화화되거나 오해되는 데에 대한 나의 견딜 수 없는 항의로부터 오늘 이야기의 첫 동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아다시피 나는 1974년 초 당시 박정희 정권의 영구집권시도였던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세칭 민청학련 사건에 주모자로 연루돼 7년여의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감옥에 가기 직전 나는 절두산 밑이나 문화촌의 허름한 여관, 내설악의 조그만 방갈로 등에서 내 직계 후배들인 이른바 제1세대에게 여러 차례 마치 유언처럼 앞으로의 민족문화운동에 관한 신신부탁을 되풀이한 적이 있다.

그 중심되는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민중을 피동상태에서 능동적 적극성으로 끌어올리려는 미학적 정치성을 회피할 것까지는 없다. 그러나 어떤 한정된 정치적 목표를 위한 노골적인 선동선전, 이른바 아지-프로(Agi-Pro)만은 반드시 피해다오. 아지-프로를 목표로 할 때 탈춤, 판소리 등으로부터 우리가 계승하는 새 예술의 그 위대하고 높은 미학성은 모두 다 흩어져버리고 말 것이다. 현실 정치는 나 혼자로 끝내자. 감옥으로 나 따라오지는 말라는 얘기다. 그런 정치는 나 하나로 끝내고 너희들은 그야말로 예술을 하라는 말이다."

7년이 지났다. 7년은 긴 세월이다.

그 7년간 한국 사회는 반독재의 민주화 투쟁으로 온통 시끄러웠다. 전 국민이 전투하는 양상이었으니 지식인, 문화인들, 자칭 광대들인들 오죽했겠는가!

이해는 한다.

또한 그나마의 노력에 대한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 역시 없지 않다. 그래, 이 자리에서 큰 소리로 외치겠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문제대로 그대로 남는다. 예술과 미학에는 결코 타협이 없다. 정치와는 딴 세상이다. 감옥에서 나온 내 눈에 비친 민족문화운동 거의 전체가 이미 예술이 아니었다. 물론 탁월한 의미에서의 예술 말이다.

제1세대 후배들은 나의 질책 앞에서 그 시대의 지배적 분위기와 격렬한 후배들 등쌀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었다. 폭력과 타도와 살해와 복수와 적의와 말살과 증오로 가득한 '죽임(죽음이 아니다)'의 한판 지옥이라고 한다면 지나칠까?

예를 하나 들자.

전통 탈춤에서는 일방적인 적대나 노골적인 선동선전 따위 세뇌행위, 주입행위는 애당초부터 통용되지 않는다.

탈춤이 연행되기 전 며칠 앞서 동네마당에 금줄을 쳐서 '거룩한 자리'로 모시는 것부터 그렇고 시작하는 길놀이에서부터 뒷풀이까지 일관하는 일종의 '초월적 중력' 또는 내 개념으로는 '흰 그늘' 그리고 '한과 신명'의 영적인 결합의 개시(開示)가 그렇다. 그래서 탈춤의 현대적 계승은 '마당극'이 아니라 '마당굿'이어야 하는 것이다. '신령한 리얼리즘'이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시각의 복층화, 전방위성 등이다. 사방팔방, 상하시방(上下十方)까지 확 트인 마당 공간에서 또한 그렇게 열려버린 관객의 협동적 시각, 시각의 시너지(Synergy) 상태에서는 결코 일방적 선동이나 적대나 세뇌, 주입식 선전·설득따위는 아예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고 비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다. 비판은 충분히 일어난다. 그것도 근본적인 비판이다. 그러나 그 비판은 감동과 결합된 차원 높은 것으로, 수용의 자발성, 인식의 다양성, 반응의 다층위성, 복잡성, 그리고 수많은 차이와 이중성, 다중성 등을 유발한다.

어떤 이들은 브레히트를 맞세워 민족주의 한계와 정치예술로서의 불완전성을 높이 주장한다. 그러나 브레히트 자신이 이미 일방적 선동이나 적의와 세뇌를 경계하는 이중성 즉 '감정이입'과 '소격효과(V-effect)' 사이의 갈등을 전제함으로써 이 문제에 선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장점이 인정되지만 더 이상 한국 탈춤이 가진 다양하고 복잡한 현대·초현대적인 새롭고 근본적인 가능성에는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그래서 나는 감옥에 가기 전 후배들에 대한 나의 부탁에서 특히 마당을 지키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상황적 제약을 이유로 옥내, 반원형, 층계 밑 사용을 반복하다가 끝내는 둥근 마당에서는 선동선전이 잘 안 된다는 이유로 그처럼 커다란 비원(悲願)과 자부심(自負心)으로 뛰쳐나온 마당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그 답답한 액자무대, 브레히트 자신이 '두개골을 로비에 걸어놓고 입장해서 울리면 울고 웃기면 웃는' 일방적 세뇌의 열차극장, 액자무대, 그 미학적 감옥으로 되돌아가고만 것이다.

나는 문제를 제기했고 우리는 옛날 남사당패의 근거지였던 안성 청룡사에 모여 밤낮 이틀간 20여 명이 거의 모든 문제점을 검토, 상호비판했고 그 결과는 그 무렵 창간된 민족문화전문지 <공동체>에 정리 게재되었다. 그러나 젊은 후배들은 자기들 주장, 자기들 입맛에 맞게 편집하여 극도로 짧게 축소된 내용을, 그것도 단 1회에 한정하고 말았다.

그 회의에서 나와 채희완 씨가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그 분투과정에서 모든 문제의 본질, 미학적 파탄 경우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들이 대강은 개진되었다.

오늘 이제부터 제시되는 문제점들은 그 일부가 이미 그 밤과 낮에 나와 채희완 씨에 의해 제시되었던 것들이다. 나는 공동체의 기사를 읽고 나서 분노보다 슬픔과 허망함을 느끼면서 다음 두 마디로 내 느낌과 태도를 결정한 뒤 오늘까지 일체 보지도 듣지도 간섭하지도 않았다.

"문화 운동은 거덜났다."
"나는 완전히 손 뗀다."

그 뒤 수십 년이 흘렀다.

지난 5월, 촛불이 켜졌다.

나는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은 촛불의 전 단계였던 2002년 6월 월드컵 때 이른바 붉은 악마 700만의 한 달에 걸친 그 희한한 응원문화에서부터 촛불의 정체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무렵에 이미 이 문화는 '개벽'이라고 판단하기 시작했고 그 표현은 '굿'이라고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로 그 촛불이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탈춤의 중요한 미학적 특징들을 드러냄에 이르러서는, 또한 개벽적 특징을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동안 수십 년 동안 포기했던, 연행예술을 포함한 문화운동을 다시 손대야겠다는, 손을 적극적으로 깊숙이 대지는 않는다 해도 논평과 방향 제시는 하는 것이 나의 한 의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충격은 갑작스럽게 왔다.

경찰이 진압목적으로 쏴대는 물대포를 그대로 맞으면서 십대 청소년과 여성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온수(溫水) 다오. 온수!"
"샴푸하고 비누 다오!"

경찰이 으스스한 목소리로 마이크를 통해 즉각 해산하지 않으면 연행하겠다는 으름장을 놓는 데 대해 "노래하라. 노래해!"

쇠파이프를 든 경찰이 경찰차 위에 올라가 그것을 우악스럽게 좌우상하로 휘두르며 모조리 두들겨 패겠다는 시위를 계속하자 "춤을 춰라. 춤 춰!"

그러면서 누군가 화가 나서 경찰차에 뛰어오르면 모조리 소리 내 합창하듯,

"비폭력! 비폭력! 비폭력!"

그러던 중 내가 참으로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한 귀퉁이 일이어선지 잘들 모르는데 눈에 안 보이는 한 스산한 목소리가 외쳐

"아무개를 찢어죽이자!"

한 여자 목소리가 건너편에서

"너나 죽여라!"

한 아이 목소리가 또 다른 쪽에서

"종이냐? 찢게?"

하하하하하―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바로 뒤이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속에서 난데없는 추임새가 튀어나왔다.

"잘 한다!"

허허허허허―

이렇게 됐다.

이게 무얼 뜻하는가?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는 바로 그 탈춤 생각이다.

드디어 정부와 경찰의 폭력이 시작되고 그들에게 진압 사유를 만들어주려고 일부러 그들과 짜고 노는 듯한 이상한 '꾼'들의 폭력의 악순환이 시작되자 그 예쁘고 유쾌한 젊은이와 여성들과 쓸쓸한 빈털터리들이 슬그머니 빠져나가고 그 뒤에 광장엔 시커먼 그늘이 서리더니 그것이 극에 이르자 천주교사제단과 불교승가회 스님들의 비폭력 평화 시위가 그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들어오면서 도리어 첫 촛불의 평화와 생명심, 그 아름다움과 유머와 미소, 춤과 노래의 감동이 되살아나는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탈춤 현대화의 또 한 번의 새로운 시도!'

'횃불에서 촛불로!'

'마당극에서 마당굿으로!'

그 같은 세 가지 테마였다.

7월 4일 수많은 스님들의 연등시위 때 나는 시청광장에 서 있었다. 환한 미소 속에 나를 어느새 알아보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젊은 남녀들, 그들이 합창하는 '아침이슬'! 그 아름다운 뒷풀이 속에서 나는 한 키 작은 젊은 사내가 잔뜩 취한 채 내 주위를 뱅뱅 돌며 '씨팔' 소리를 연발하며 가래를 찍찍 뱉으면서. 그렇다. 그는 분명 내가 만든 용어로 '까쇠'였다.

프랑스 말로 '시민들의 평화 시위 때마다 복면을 쓴 채 끼어들어 난동을 부리고 파괴를 하며 욕설을 퍼부어서 사태를 악화시킨 결과 시위를 목적과는 다르게 경찰이 잡아가기 좋게 난장판을 만드는 파괴자'를 '까쇠르(Casserer)'라고 한단다. 나는 그것을 약간 변화시켜 '까부시고(파괴) 까불고(난동) 까발리는(선동) 것을 본업으로 하는 꾼(마당쇠라고 부를 때의 그 '쇠')이라고 부르고는 촛불관계 강연이나 인터넷 기고문에서 이 '까쇠'의 문제점과 이 두 종류 까쇠의 <극단적 폭력의 악순환>에 대한 중도적 평화적 대응과정에서 '참선'과 같은 새로운 '마당굿'의 진행 원리를 발견하는 듯했다. 그리하여 오늘 이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이제 예전처럼 그 질기고 필사적인 집착으로 후배들을 설득하고 끌고 가는 그런 사람이 이미 아니다. 나는 7년간의 독방에서 이미 나 스스로 '독방'이 되었다. 나는 개체요. 분명 '방콕'이다. 그러나 '우주를 품에 안은 방콕'이다. 이것은 못 고친다. 나는 '외로운 못난 시인'으로 자기를 재정의하고 있는 사람이다.

나를 따르라고 결코 요구하지 않는다. 한 번 듣거나 읽고 나서, 또는 토론하고 나서 마음에 안 들면 즉각 잊어버리고 자기 길 가기 바란다. 절대 서운해하지 않는다. 편히 하시라.

다만 '융합'이라는 '내부공생(內部共生)'을 조금이나마 '자기조직화'하는 일을 내 나름으로만, 개체로서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로만 조금씩 도우려 할 뿐이다.

다만 한 가지 끝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촛불과 탈춤이 똑같이 먹는 음식이나 매일매일의 삶을 중심으로 한 생활가치를 기본 테마로 한다는 것과 그래서 혼돈을 포함한, 혼돈 그 자체인 생명과 그 생명의 표현과 요구의 진행을 어떠한 적대나 갈등이나 풍자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평화에 입각한다는 바로 그 원칙, 생명과 평화의 원칙만은 명백한 일치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 그것뿐이다.

즉, 질 들뢰즈의 '카오스모스(Chaosmos)', 동학의 '혼돈한 근원의 한 기운(渾元之一氣), 정역(正易)의 '여율(呂律, 여는 혼돈이고 율은 질서)'이니 생명평화는 이미 그 자체로서 '혼돈적 질서' 즉 '화엄개벽' 혹은 '개벽적 화엄'이라는 점이다.

단, 그 혼돈적 질서를 잊지 않고 끊임없이 '모심(侍)'이 중요하다. 바로 그 모심이 촛불이요 마당굿이요, 참다운 예술이다. 종교적·영적차원, 수행차원으로 본다면 다름 아닌 '참선', '간화선(看話禪)'이다. 화두를 붙들고 늘어지는 수양공부요 표현행위겠다.

내용으로는 생명과 평화요, 형식으로는 혼돈과 질서다. 참선이란 두 개의 극단 사이를 'no-yes', 'yes-no', 동학의 '불연기연(不然其然)', 'on-off', 'off-on'하며 왕래하다가 문득 숨어있던 차원에서 새 질서가 올라오며 차원이 변화하는 과정이다. 그러면 다시금 옛 드러난 차원과 밑에서 올라온 새 차원 사이의 생성관계 또한 'no-yes', 'yes-no'로 진행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구상주체, 기획주체와 표현주체, 감상주체가 모두 다 대상으로서의 혼돈적 질서를 외면하지도 휘말려들지도 않는, 집중하면서도 중립적 태도를 견지하는 참선, '비판(거리두기)적 감동(하나되기)'을 지속해야 하는 것이다.

적대적 투쟁성 일변도로 사물과 극적 대상관계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변증법마냥 한꺼번에 우당탕 타오르는 '횃불'이 아니라(서구 전통 근대극은 전적으로 횃불이 타오르는 과정이다) 타오르면서도 동시에 조용히 가라앉는 '촛불(참선이자 마당굿이자 모심)'이어야 한다.

모심은 동학 개벽운동의 수련법이다. 모심(侍天主), 그 안에 이미 다음 단계의 살림(造化定)과 끝없는 기억수련 및 그 원리를 실천하는 구상과 기획·표현·언행단계(永世不忘)에 이어 '깨침(万事知)'을 다 함축한다.

마당굿으로 말한다면 '길놀이(모심)', '열두마당(살림)', '뒷풀이(깨침)' 순서이자 열두마당 안에서는 역시 '모심, 살림, 깨침' 또는 '깨침-살림-모심', '살림-모심-깨침' 또는 '깨침-모심-살림' 등이 될 수도 있겠다.

이 원리가 현대극으로서의 마당굿의 미학으로 합당할 것인가를 검토해 봐야 한다. 정신과 생명의 악한 질병으로 가득찬 현대인들에게 앞으로 생태계 오염과 기후변화 등 대혼돈으로 인해 질병은 대유행할 것이다. 마당굿은 마땅히 또한 나의 치유행위여야 하고 의통(醫統)으로서 세상과 삶을 개벽(開闢), 즉 열어야하기 때문이다. 칼 융의 중요한 임상치료 방법이 환자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고 다시 밖으로 나아가고 다시 또 상처 내부로 들어가는 반복수렴 확장의 확충법(擴充法, Amplification)인 점을 한 번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탈춤, 굿판을 동래쪽 들놀음에서는 '야장(冶場)'이라 불렀다. 오리엔테이션 장소란 뜻이다. 탈춤은 예부터 동네사람들의 치유행위로서의 굿판이었으니 극의 계기를 안에 품는 새로운 굿 기능을 회복함이 마땅하다. 이것이 불교의 '화엄적 참선'이고 해월 동학의 '나를 향한 제사(向我設位)'의 모심개벽의 한 틀이다.

바야흐로 생활·생태·생명·생계·생존과 건강, 아이들 교육이 가장 중요한 시대다. 촛불의 아젠다가 무엇이던가? 미친 쇠고기 수입 반대, 물문제, 대운하 반대, 의료민영화 반대, 공기업 민영화 반대, 몰입 영어교육 반대 등이다.

생명은 이제 이 시대의 화두다. 생명과 생활, 생존과 건강을 대중적 차원에서 주제로 다루어야 할 마당굿의 미학은 단연코 '생명미학'이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삶과 몸과 넋의 관계가 가장 압도적 주제요 형식이었다. 탈춤은 우리 사회뿐 아니라 아시아와 서양을 포함한 전 인류와 전 지구의 현대·초현대적 주제요 형식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다음 문명을 결정한다. 때문에 우리는 서양의 생태학·환경학·생물학·진화론과 의학 등을 열심히 배우고 의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그들의 생명과학, 생태과학, 의학이 한계에 부딪혀 효력과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 냉엄한 객관적 평가다. 부정은 서구 과학자, 의사, 지식인, 전문가 그 자신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물론 서양 과학은 아직도 그 나름의 보편적 영향력과 효력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았다. 그 대신 서구 과학자, 의학자, 생태학자와 전문가들은 동아시아 생명학의 전통으로부터 무엇인가 새로운 생명과학의 탁월한 지혜의 원형과 패러다임이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고 그에 연속된 생명사상, 생명문화를 타는 목마름으로 기다린다. 그리하여 동서양 생명문화의 빛나는 융합을 기대하고 있다. 새 마당굿과 새 판소리를 비롯한 한국의 새 예술은 바로 여기에 활발한 대답을 해야 할 책임이 있고 이제 그 대답은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서양쪽 생명 이야기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니 여기서는 접고, 그 대신 몇 가지 한국 전통 생명사상, 그 중에도 '동의학(東醫學)'이라 부르는 한국 전통적 생명과학, 의학원리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보자.

새 마당굿은 옛 탈춤처럼 하나의 강렬한 치유행위, 강증산처럼 의술을 통한 평화적 후천개벽의 문화 형식이어야 한다고 이미 말했다. 그리고 칼 융의 확충법(擴充法, Amplification)을 예로 들었다. 마당굿의 미학이 확충원리를 쓴다는 것은 곧 정신적 치유기능과 직결된다.

동양의학의 경우 '확충'이라는 개념은 맹자(孟子)의 '확이충(擴而充)'에서 비롯된다. 19세기의 천재 의학자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의 '사상의학(四象醫學)'은 바로 이 개념을 이른바 '성명론(性命論)과 사단론(四端論), 즉 근본적 목숨의 숨은 차원과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드러난 차원 사이를 일원적(一元的)으로 살아 넘치게 하는 생동적 치유 방식을 '확충법'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경우 '생명'은 음(陰)이요 '사단'은 양(陽)이다. '아니다 그렇다'로 볼 수도 있다. 마당굿 극본과 연출과 연기, 또는 관객의 감상과정 전체에 적용된다면 그것은 '판'의 진행에 있어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인가?

그밖에도 사상의학은 인간의 근본 생명체질을 넷으로 나누어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으로 구분하고 이들 각각의 특성과 체질에 따른 독특한 처방을 내리고 그 상호관계도 언급한다. 굿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서양의 경우, 칼 융이 활용하는 확충원리도 피타고라스의 이른바 '테트락티스(tetraktis)' 즉 '사위체(四位體)'의 위상 연관을 전제하고 그 위에서의 '만다라' 즉 원만한 정신 회복을 목표로 한다. 이 두 갈래 확충법 사이의 결합도 동서양 차이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인가?

그 이전 임진·병자 전쟁기의 허준(許浚)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은 여러 가지 빛나는 의술들에 이어 저 유명한 경락론(經絡論)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고 서양인들을 놀라게 한다. 렌트겐과 MRI로,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해야만 겨우 병인(病因)을 알아내는 그들에게 순전히 실체나 존재가 있지도 않음에도 감(感)으로 그 경락을 짚어내는 한국의술을 신비의 눈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락의 종류는 일년 365일의 시간과 똑같은 삼백육십다섯(위상이 아니라) 개의 흐름이다. 그것도 물이나 피처럼 선적·연속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별 뜨듯 꽃 피듯 여기저기서 '반짝!', '살풋!' 열리고 핀다. 마치 마당굿이 연산(連山)구조인 것과 똑같은 원리다. 바로 이것이 생명의 실상이다.

서양 해부학의 토목공사식 구조론과 같은 생명인식과는 너무나 멀다. 하긴 눈에 보이는 바로는 그런 측면도 인정돼야 하겠다. 동무 이제마의 사상의학도 네 가지 장기(臟器)계의 인식은 얼른 보아서는 이와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다. 물론 근본은 다른 원리이지만.

그러나 경락은 표층만이 아니라 심층도 있다. 드러난 차원의 365종류 외에 또한 매우 심오하고 어렵고 까다로운 숨은 차원이 또 있다는 것이다. 기혈(氣穴)과 관계가 있다. 이것이 개벽적 생명운동에 있어 앞으로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이 같은 생명의 복잡미묘함에 놀라기 이전에 마당굿쟁이들은 이 오묘한, 그리고 복잡한 생명 안팎의 현란한 움직임을 앞으로 어떻게 마당과 판에 적용할 것이며 그 적용을 통해 정신적·육체적, 문화적·사회적, 생태적·우주적으로까지 예술적으로 치유할 것인가를 이 생명·생태·생활을 언제라도 이슈로 하는 촛불의 직접 민주주의 시대의 요구와 목마름에 대응해서 궁리, 연구 및 표현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풍수지리학은 이미 도선(道詵) 이후부터 땅, 지구에도 역시 표층, 심층의 경락계가 있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생명·생태사상은 우리의 연상을 '참동계(參同契)' 사상에로까지 비약시킨다. 참동계는 연단(鍊丹) 즉, '생명 살리는 수련법(丹學)'인데 본디 고대 한민족의 선도(仙道) 수련법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 우주 만물의 전화(轉化) 과정의 과학인 '주역(周易)'과 습합된 것이다. 우주의 법칙인 음양, 오행, 팔괘, 삼관(三關), 절기, 음양승강(높낮이) 진퇴(나아가고 물러남), 육십사괘 방원(모나고 둥근 것) 등의 원칙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우주가 인간의 몸 안에 압축돼 있다는 바로 이 사상에서 마당굿쟁이가 즉각적으로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어떻게 이 시대에 맞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것을 느끼는 것 아닐까?

허준 시대에 이미 허임(許任)이라는 위대한 천재 생명과학자가 활동했다. 그는 뜸과 침(鍼灸法)의 명인이었다. 침구과학은 우리 몸을 '약창고'라고 주장한다. 수술이나 약물 따위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건드려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쑥봉에 불만 붙여주면 몸 자신이 스스로를 치료한다. 비용도 들지 않는다. 침으로 '대병겁(大病劫)'과 '악질만세(惡疾滿世, 악독한 질병이 온 세상에 가득함)' 시대, 후천개벽 시대, 생태계 파괴와 오염과 멸종, 기후 변화, 온난화와 간빙기(間氷期)가 엇섞여 몰아쳐 올 것이라는 대혼돈의 위기 시대의 미학, 생명과 생태 미학의 대중적 표현 근거로서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생명의학이다.

이것이 마당에, 판에 어찌 응용되는지를 어디 한 번 기다려 보자. 우선은 이 대중적 한국의술의 불패의 공능을 앞세워 홍보라도 해줘야 할 것이다. 돌멩이, 화염병, 쇠파이프, 붉은 머리띠, 더군다나 시위 때마다 주먹을 휘두르며 외치는 '나 먼저 가노니 산 자여 따르라'는 노래가 문화의 앞장인 이 시대에 생명의 길을 강조, 소개하는 것이 반동이요 역적인가?

나는 안다. 참다운 민중, 절대 다수 민중은 당연한 마음이지만 '죽자'가 아니고 '살자'를 좋아한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산 것을 좋아하고 죽이기를 싫어한다(好生不殺), 양보하길 좋아하고 다투기를 싫어한다(好讓不爭). 그래서 죽지 않는 군자의 나라다(不死君子之國)'. 훨씬 더 다수인 고통과 저소득과 실업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쓸쓸한 비조직, 비정규직 대중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높은 임금에 당 조직까지 국회에 보내고 있는 조직 군중은 입만 열면 '죽자!'고 소리지른다. 별로 죽지도 않는 사람들이 말이다. 이런 세태에 과연 마당굿쟁이들이 내 희망처럼 용기있게 생명미학을, '살자!' 소리를 내지를 수 있을는지 사실 믿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살자!'고 안 한다면?

그러나 그런다 해도 나는 까딱 안 한다. 이미 말했거니와 어떤 경우에도 나는 까딱도 안 한다. 나 혼자라도 생명과 평화의 길을 갈 테니까!

요즈음 중국이 저희들 의술이 서양 것보다 훨씬 우수한 최고의 생명과학임을 뻐기고 있고, 그것이 저희 문화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창조적 중심이라고까지 폼 잡는다. 중국 의학의 진정한 첫 시작이요, 지금껏 단 한 자도 수정 변경하지 않고 중국인들이 묵수(默守)하는 고전 중의 고전이 바로 '황제내경(黃帝內經)'이다. 그러나 황제내경이 어디로부터 왔는지에 대해 중국의 진짜 지식인이나 의사들은 솔직히 말한다. "한민족으로부터, 동쪽으로부터 왔지요."

황제내경 전 편이 모두 다 황제(黃帝, 4500년 전 중국 화하족의 추장)가 기백(岐伯)에게 생명의 진리를 물어 배우고 깨닫는 과정으로 기록돼 있다. 기백이 누구인가? 동이족 의학자로서 '자부선인(紫府仙人)'의 제자다. 자부선인은 또 누구인가? 그 역시 동이족의 대 선도수련자(仙道修練者)다.

선도는 풍류도다. 풍류도는 또 무엇인가? 생명사상이다. 이제 분명해졌다. 중국 최초 최고의 생명과학은 동이족, 동쪽 땅으로부터 비로소 온 것이다. 도저히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생명사상에 이르면 '동북공정'따위는 발붙일 곳도 거짓말 속임수도 있을 수가 없다.

어쩌다 기백과 자부선인이 살던 그 때의 땅이 산둥반도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들어 중국인이라고 억지 부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황제 때의 화하족의 판도는 북경의 서쪽으로 좁게 한정돼 있어 산둥반도가 동이족의 땅이었음을 백방으로 증거한다.

중국 처방의 절대 수가 약물복용인데 오늘날 그 약재의 거의 전부가 오염된 것이고 마땅히 자연산이어야 할 약재가 모조리 농작물인데다 중국 농업의 화학영농법은 너무나 일반화되어 있는 조건에서 그들이 최근 앞세우는 장기가 침술(鍼鉥)인데 여기 문제가 있다. 중국의 번듯한 정통 의서(醫書)에마저도 '침은 동쪽에서 왔다'고 명백히 기록돼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미워서가 아니다. 우리 전통, 특히 생명학, 생명문화의 전통을 우리가 너무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참으로 생명예술, 생명미학을 해야 할 굿쟁이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만약 쑥도 그렇지만(뜸에 가장 좋은 쑥봉은 역시 강화(江華) 것이다) 침의 경우에도 인간 몸이 약창고라 한다면 이것은 예술적 상상력 전체, 마당굿 판에서 엄청난 상상력의 폭풍을 불러오는 한 메타포, 한 영적 지혜가 된다.

의학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 예술인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중국인이 자랑하는 조화와 평화의 철학자 공자마저도 자기의 뜻이 중국 천하에 받아들여지지 않자 '군자의 나라 동쪽에 가서 살고 싶다'고까지 말한다. 그렇게까지 주장한 공자 자신의 최고의 사상적 멘토인 순(舜) 임금이 바로 다름 아닌 동이족이었음을 맹자의 글에서 우리는 알게 된다. 순 임금의 음악, 우주적 생명음악인 율려의 극치였다던 '소악(韶樂)'의 창조적 체험 근거는 동이의 역사다. 그 생명성과 영성이 곧 소악의 탁월한 우주성의 근거였던 것이다.

주역(周易)은 어떠한가? 주역은 서구 지식인, 과학자들이라면 거의 모두가 탐독하고 깊이 배우는 책이다. 라이프니츠, 헤겔에서 융과 닐스 보어와 루이스 멈포드에까지.

주역은 생명학, 우주 생명학이다. 그러나 3000년 이전의 그 샘물인 복희역(伏羲易) 역시 동이 문화의 산물이다. 요하문명의 '홍산문화(紅山文化)'의 창조적 주역 역시 중국(물론 그들도 공동 창조자이지만)이 아닌 동이족이다. 그 증거가 수많은 옥그릇(玉器), 그 중에도 마고신화와 파미르 문명 시대에 해당하는 1만4천 년 전 것으로 측정된 '검은 옥(黑皮玉)'이다. 중국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인정하는 길 밖엔 없는 생명사상의 무서움이다.

주역 우주론의 핵심인 태극은 또 어디서 기원하는가? 동이 문화가 포함된 동북방 샤머니즘의 천지인 사상인 '삼태극(三太極)'이다. 중국에서 태극이 나타난 것은 송나라 때요, 한국에서는 그 보다 4세기나 빠른 신라 감은사 두댓돌에서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에 들어가 음양 태극으로, 그것도 '이원화(二元化)'되어버린다. 음양은 역시 중국 화하족 소산이 아니라 인도, 동남아, 페르시아 등 고대 해양 농경문명으로부터 전해진 농업정착적 우주론, 즉 '해와 달의 사상'으로부터다.

주역은 생명사상이므로 우리는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주역은 중국역이고 군자역이며 남성역이고 이성과 질서 중심의 정치적 처신술, 통치술의 일종으로 한계지어져 있다. 넘어설 수 없는 한계다.

19세기에 이르러 중국역에서 한국역, 민중역, 세계역, 여성역, 영적이고 감성적이면서 또한 이성적이고 혼돈적 질서의 역, 지구와 우주 만물의 역, 대전변과 후천 우주개벽의 변혁역, 그 변화 속에서의 생명 변화의 역인 '정역(正易)'이 나와 위대한 화엄 불교와 함께 동학, 증산, 소태산의 개벽적 남조선 사상사와 함께, 서양의 생태학과 더불어 이제 마당굿의 생명의 멘토가 되기에 이른다.

이 흐름이 기철학(氣哲學)의 화담 서경덕, 녹문 임성주, 해강 최한기, 강화 양명학의 정재두 등의 생명학으로, 그리고 원효의 대승적 연기론(緣起論)과 귀명(歸命)·화쟁·무애와 중도(中道) 사상 이후 다시 의상에서 현대의 탄허(呑虛)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화엄학, 동학 천도교의 수운, 해월 이후 개벽지의 이론화에 이어 해방 뒤의 김범부(金凡父) 그리고 6.15 뒤의 한동석(韓東錫)의 생명학은 참으로 면면하다. 기독교에서도 유영모, 함석헌, 김재준, 강원용이 뒤를 따른다. 이조 후기 실학마저도 그렇다. 16세기 마테오리치 이후 이벽(李檗)의 <천주실의(天主實義)>에까지도 그렇다.

물론 이 길고 긴 생명학의 역사를 일관하는 전 민중적 사상사는 필경 미학에도 연결될 것이지만, 몇 가지 원칙이나 개념, 범주만 가지고도 새 마당굿의 생명 미학을 구축할 수 있고 연출론, 연기술, 극장론 등을 추출할 수 있을 것이며 판소리와 기타 생명 예술의 시대를 탁월하고 확실하게 열어 줄 빛나는 열쇠를 제공할 것이다. 부디 관심 갖기를 바란다.

이에 다음과 같이 우리의 새 마당굿은 동의 슬로건을 제의한다.

운하에서 바다로!
횃불에서 촛불로!
마당극에서 마당굿으로!

연행예술은 모든 기초예술의 집약점이자 용광로요, 모든 엔터테인먼트와 게임과 이미지들이 함께 뛰어노는 굿판이다.

마당굿의 정향은 한국문화예술 전체와 디지털 게임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유비쿼터스적 양식들의 전시장이어야 한다. 서양 엔터테인먼트 이론은 전쟁과 전략으로부터 출발한다. 동양의 그것은 천지인과 음양론으로부터로, 신과 우주의 뜻을 묻는 것이다. 중국의 장기와 바둑은 한민족 고대의 '윷경(심원봉 정리)'으로부터의 내용을 왜곡시킨 것이다. 윷의 하늘의 뜻을 묻는 유희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파톨리 게임'에도 나타난다.

이 윷의 우주성이 살아나야 한다. 우선 마당굿 안에서부터, 또는 게임·애니메이션 등 오락 엔터테인먼트 아트에서도.

한민족을 중심으로 해서 동서양 모든 전통과 고대 문화에도 전 세계인이 참가하는 거대한 '네오 르네상스', 그리고 생태계 파괴와 기후변화 등 대혼돈 및 세계 정치·경제·사회 등 문명사 전면의 대전환에 임하는 '전세계 문화 대혁명'이라는 위대한 쌍방향통행을 목전의 과제로 해야 한다.

마당굿과 한국 문화예술 및 놀이는 젊은 세대와 여성을 주체로 하고 늙은 세대가 보완·협력하는 후천개벽을 추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세계사 진행의 새로운 아키타이프이자 패러다임이며 디스커스(담론), 즉 '성배(聖杯)'를 제시하는 산고(産苦)를 감행해야 한다.

촛불을 연구해야 한다. 촛불의 주요 연구 명제는 '모심', '개벽', '화엄', '흰 그늘'이다. 조동일의 '탈춤의 원리와 역사(<카타르시스·라사·신명풀이> 합본)', 그리고 천이두의 '한(恨)의 구조연구' 다시 공부모임을 정례화 할 필요가 있다.

탈춤, 판소리, 민요, 민화 등에 관한 공부를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촛불 및 글로벌 시대의 민족문화운동을 재구상하고 그 과정에서 이제까지의 그 현대화 운동을 반성하며 '미래파' 등 신세대의 그로테스크예술, 혼돈의 양식, 추(醜)와 질병의 미학(카를 로렌크란츠의 '추의 미학', 아돌프 루턴버그의 '질병의 미학'은 추사의 '괴(怪)의 미학사상'과 비교검토되어야 한다)을 예의 검토해야 한다.

프리드리히 실러의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서한' 공부모임이 필요하다. 여기에 동반하여 프랑스 68문화혁명, 중국 문화혁명과 촛불(2002년 붉은 악마로부터 시작하여)을 비교검토해야 한다. 최근 연행예술 안에 서양식 드라마 투르기 미학이 다시 왕성하게 일어난다. 이 문제도 날카롭게 비판·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공부와 새 마당굿 운동 및 새 판소리 운동 등은 반드시 목포와 부산의 문화운동 주체들의 단단한 연대를 통해 추진되어야 하며 그 성과를 바라면서 차차 북상(北上)하고 아시아 및 일본·미국·유럽과 중국, 그리고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등으로 확산해가야 할 것이다.

문화운동 제1세대의 공로를 충분히 인정하면서 필요한 만큼 비판해야 한다. 먼저 제1세대 선배들의 솔직하고 충분한 진술과 고백을 자주 청취하는 것이 예의이자 필요한 과정이다.

지금은 이 운동을 정치적 충격에 우선 대응하는 따위 주먹구구식으로 할 생각은 아예 말아야 한다. 미학공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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