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으로 시집 온 필리핀 출신 아나벨 씨 경찰 외사요원 특채

“한국에 거주하는 모든 이주여성의 ‘대표’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그리고 당당하게 근무할 것입니다.”

필리핀에서 함평으로 시집온 ‘이주여성’이 경찰관이 됐다.

주인공은 지난 25일 중앙경찰학교를 졸업한 아나벨(여·41) 경장.

외사요원으로 특채된 그는 24주간의 교육과정을 수료하던 이날 함평에서 올라온 시어머니와 남편, 자녀 앞에서 자랑스러운 ‘경장’ 계급장을 어깨에 달았다.

함께 임용된 1천30명의 졸업자 가운데 그녀와 인도네시아 출신 주지강(38) 경장만이 귀화자 출신이다.

지난해 임용된 중국동포 출신 신춘화(여·40) 경장을 포함해 3명의 ‘귀화 경찰관’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아나벨 경장은 1997년 5월 함평에서 농사를 짓는 남편(47)과 결혼하면서 한국인이 됐다.

필리핀에서 고교 교사로 일했던 그는 95년 남편을 소개받아 연애 끝에 결혼한 뒤 함평에서 11년 동안 남편의 일을 도우며 살아왔다.

짬짬이 월야초등학교에서 원어민 강사로 활동하며 아이들을 가르쳤고, 경찰에 도움이 필요한 외국인들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

평범한 이주여성이었던 아나벨 경장에게 ‘제 2의 인생’을 선물한 사람은 함평경찰서 소속 권연희(34) 경사였다.

권 경사는 평소 이주여성들을 상대로 가정폭력 예방활동을 펼치며 아나벨 경장과 정이 들었고, 지난해 10월 외사계 통역요원을 특채한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그에게 응시를 권유했다.

아나벨 경장도 흔쾌히 응했고, 필기·실기·적성검사 등을 거쳐 지난 2월 최종 선발돼 중앙경찰학교에 입교했다.

그러나 입교 초기에는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보다 가족들에게 대한 걱정이 앞섰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세 자녀 성주(11), 성민(10), 유미(여·8)를 돌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올해부터 오리사육을 시작하는 남편을 도울 수 없게 된 것도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여기에 남편은 ‘아내가 너무 힘들어 질 것 같다’고, 필리핀 부모님은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그가 경찰관이 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아나벨 경장의 의지는 확고했다.

가정폭력을 당하고도 통역을 제대로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경찰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주여성들이 존재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불법체류자들도 처벌이 두려워서 기관의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이해한 남편도 졸업식장에서는 “당신이 자랑스럽다”고 응원했다.

그는 앞으로 외사업무에 투입되기 전 6개월 동안 경기 안산경찰서 지구대에서 근무하며, 현장을 체험하게 된다.

아나벨 경장은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갑자기 새벽부터 일어나서 구보를 하고, 한국어로 된 어려운 교재로 공부를 하면서 이 길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저의 노력이 모든 이주여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어려움에 처한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서 근무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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