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도둑'이던 우리, 국민 믿고 쇠고기업무 거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은 지난 2일 기자회견을 통해 비장하고 다소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국민에 봉사하고 헌법에 규정된 공무원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부당한 업무지시를 거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광우병 쇠고기 홍보지침, 물 사유화, 공공부문 외주위탁, 국립대 법인화 등 행정 공공성 해치고 국민 건강권 위협하는 잘못된 정부정책에 대한 행정지침 수행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우리 헌정 역사상 최초로 벌어질 공무원의 전국적 집단적 행동거부 운동은 공무원 신분을 건 저항운동입니다. 정부는 공무원법 위반 등을 빌미로 온갖 탄압을 해오겠지만 광우병 쇠고기와 공공성 해체, 이명박 반대를 외치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국민을 믿겠습니다. 지금 시기 공무원이 해야 할 역할과 책무를 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국민을 위한 공무원의 모습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욕먹던 우리, 행정거부 선언으로 거듭났다"

열흘 만에 그 '탄압'이 들어왔다. 행정안전부가 손영태 전공노 위원장을 고발 및 징계조치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법과 원칙을 무시한 불법행위에 대하여 엄정대처하고 공직기강을 확립한다"는 이유가 붙었다. 손 위원장 외에 전국민주공무원노조와 공무원노조총연맹 쪽 공무원 5명도 고발당했다.

12일 서울 영등포 전공노 사무실에서 만난 손영태 위원장은 초연했다. 체포영장을 기다리며 국민과 함께 가겠다는 것이다. 손 위원장은 촛불이 공무원을 일깨워줬다면서 "행정거부선언이야말로 공무원의 존재 이유와 자부심을 확실하게 심어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손 위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행정거부선언을 한 지 열흘여 만인 어제(11일) 행정안전부가 '행정거부선언 공무원 고발 및 징계조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행정안전부가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 안 보인다.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공무원 노조가 정확히 보고 이것을 국민에게 전한 것이다. 그런데 행정안전부는 이것을 공무원 노조에 대한 탄압으로 보답했고 이것은 또 한번 우리 국민의 가슴에 못질을 한 것이다."

- 행정안전부 혹은 예전 행정자치부 시절부터 따져보자. 공무원노조 단체에 대한 고발 조치 전례가 있는가?

"전혀 없다. 처음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공무원들이 비로소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당한 자신감을 얻었다. 솔직히 예전에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이러면(정부정책에 반대하면) 안 된다는 시각이 있었다. 정부 권력기관의 횡포에 대해 위축감도 있었고 의사 표현도 못했다. 그런데 '공무원인 나도 한 명의 국민이고 그 입장에서 반대해야 할 역할이 있구나' 우리 공무원들이 그것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 지난 2일 밝힌 내용을 보면 '국민에 봉사하는 공무원 업무를 다하기 위해 부당한 업무지시를 거부하겠다'는 것인데, 어떻게 해서 이런 결정이 내려지게 됐는가?

"국가공무원법 혹은 지방공무원법을 초월한 행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불안감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때 우리 지도부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국민들이 밤을 새면서 촛불시위를 하고 있는데, 이런 정권의 명확한 잘못에 대해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후 분명히 파면·해임·징계·고발 등의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지도부들은 '거취 고민하지 말자, 현직 지도부들 파면 해임 고발 결의하고 가자'라고 의견이 모아졌다. 우리는 당연히 해야 할 일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구속도 각오... 끝까지 국민만 믿고 간다"

- 행안부가 경고성 엄포로 그칠 것 같지 않다.

"공무원 노동조합 조직을 왜 정부에서 무서워 하는지 아는가? 국민들과 직접 대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서워하는 것이다. 우리의 부당 행정지시 거부에 대한 파괴력이 대단하다. 그래서 행안부가 나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징계 논의에 응하지도 않을 것이고 당연히 출두도 안 할 것이다. 체포영장 들고와 체포되는 한이 있더라도 버틸 것이다. 구속 불사하고 있다. 우리는 국민을 믿는다. 우리의 선언이나 행동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다. 국민의 권리에 따른 공무원의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두려울 것이 없다."

- 오늘(12일) 중앙운영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나? 결의사안이 있는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중앙운영위 안건으로 '대통령 불신임 투표'가 올라왔다. (중앙위에서) 결정되면 시기 결정해 대의원대회 안건으로 올릴 것이다. 무난히 통과되리라고 본다. 충분히 불신임 투표까지 이어지는 분위기다."

- 일반적으로 보면 '그래도 공무원인데, 공무원은 이러면(행정업무 지시 거부) 안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의견을 가진 국민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맞다. 하지만 되짚어보자. 공무원들이 정권 바뀔 때마다 줄 서고 잘못된 정책이더라도 다 이행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국민에게 불신임받던 시절이 있었다. 심지어 '철밥통' '세금도둑'이란 얘기도 듣지 않았나. 그런데 공무원 노조가 생기면서 내부에서 외부의 목소리와 함께 숨을 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어떻게 하면 공무원들이 국민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것들이 이제는 결실을 맺는 것 같다. 공무원들이 거듭나고 있다. 촛불집회 나가면 시민들이 물어본다. 정말 공무원들이냐고. 그렇다고 대답할 때 정말 뿌듯하다."

- 공무원노조의 '부당 업무지시'가 일종의 선언에 그칠 지 아니면 구체적으로 실현될지 관심인데?

"이렇게 보면 된다. 현재 행정안전부가 각 자치단체 부단체장들을 소집해서 쇠고기 문제에 대해 주민설명회 등을 개최해 홍보하라 이러고 있는데 홍보 되고 있다는 얘기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진행 잘 안되고 있다. 최말단 읍면동사무소에서부터 진행 잘 안 되고 있다. 지시 무기력 현상이다."

- 행정안전부에서는 공무원으로서 품위를 손상하는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데?

"개의치 않는다. 국가공무원법에는 '부하는 상사의 명령에 대하여 의견을 진술할 수 있고 위법한 직무 명령에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고 나와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 7조에는 어떻게 명시되어 있나.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나와 있다. 우리는 이걸 믿고 간다."

"공무원은 국가 아닌 '국민'에 책임지는 사람"

- 이명박 정권 출범 초기 유독 공무원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공무원 사회 분위기는?
"이명박 정부는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여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전체 공무원들을 싸잡아 일 안하는 공무원, 신뢰하지 않는 공무원 이런 식으로 낙인찍어 국민에 대한 반감을 불러오려 한다. 공무원들은 명예와 자부심 있는 사람들이다. 공무원들의 정부 신뢰도는 거의 밑바닥이다. 알다시피 이 정부는 노동조합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하물며 공무원 노조는 어떻겠나. 그런데 잘못 생각하고 있다. 이 정부가 공직사회 개혁하려면 공무원 노조와 함께 상생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 행정자치부가 행정안전부로 명칭이 변경됐다. 공무원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인수위 때 행안부 조직이 생기면서 조직 비대하게 만들고 실제 국민 밀접한 기관 통합시키겠다고 했는데 결국 예전 권력기관으로 돌아간 것 아닌가. 공무원들은 누구나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본다. 공무원들을 편하게 부릴 수 있는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니 괴리가 그만큼 큰거다."

- 광우병에 안전하지 않은 미 쇠고기 수입문제로 공무원노조 차원에서 더 높은 수위의 지침이나 행동을 결의할 수도 있나?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정권 퇴진 운동까지 벌이려고 하는 판이다. 재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민들이 촛불집회로만 끝날 것 같지 않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과 손잡고 정권 퇴진까지 이어지는 흐름에 함께 할 것이다."

- 지방 상수도 즉 수돗물 민간위탁 관련한 사안도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처음에 물 민영화 투쟁을 전라도 남원에서 했다. 그런데 오늘(12일) 철회가 됐다. 시장이 철회권고안을 받아들였다. 물이 사유화 됐을 경우에 심각한 경제적 사회적 공황 상태가 초래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물은 생명인데 이 정권은 물을 산업으로 본다. 해괴망측한 논리가 국민들에게 먹히지 않는다. 물 민영화는 공무원 노조가 사활을 걸고 막을 것이다."

- 공무원들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내부 자정노력도 중요하다.

"공무원 노조가 그동안 자치단체 관행 바꾸기 위해 엄청난 노력 기울였다. 자치단체 시의원 해외연수 문제, 연봉을 멋대로 올리는 행태, 업무추진비 남용 등은 모두 공무원 노조가 개선한 사항들이다. 불법선거 감시활동을 내부에서 벌여 관권선거를 뿌리박지 못하도록 했다. 이런 노력들을 기울이면서 공무원들 스스로 많이 바뀌었다. 공무원 노조 없었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더불어 이번 촛불행렬이 공무원들을 많이 일깨웠다. 촛불집회 나가면서 공무원노조도 많이 배웠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가는 노동운동이 중요한 때다."

- 전국민주공무원노조는 행안부 장관 퇴진 요구까지 들고 나왔다. 공무원 노조 조직 모두 강경일변도로 치닫고 있는데?

"행안부 장관 퇴진은 오히려 낮은 수준일 수 있다. 지금 내각 총사퇴 분위기가 일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들은 그걸 원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국민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행동할 것이다."

손 위원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좀 다른 얘길 하겠다"더니 느닷없이 '배심제'를 언급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들어보니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우리나라 사법개혁 속도가 더뎌서 문제지요. 하루빨리 배심원제가 도입되어야 합니다. 지금 공무원 사회는 거의 '공안정국'이 형성되어 있는 분위기 아닙니까. 판검사는 법에 따른다며 멋대로 우리 공무원들을 단죄하겠지만 국민 배심원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무죕니다. 국민들이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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